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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V 국민방송

단파방송 밀청사건…방송으로 항일투쟁 전파

국민리포트 월~금요일 11시 50분

단파방송 밀청사건…방송으로 항일투쟁 전파

등록일 : 2016.08.16

앵커>
1942년 '단파방송 밀청사건'을 들어보셨습니까.
이 운동은 당시 꺼져가던 항일의 불씨를 되살린 중요한 계기가 됐는데요.
광복의 달을 맞아서, 방송인들의 독립투쟁 운동과 그 의미를, 문인수 국민기자가 짚어봤습니다.
[기사내용]
혹독한 고문에 견디지 못한 비명소리가 일제강점기 혹독했던 상황을 전해줍니다.
단파방송 밀청사건에 연루된 방송인들도 이 같은 고초를 겪다 옥사까지 했습니다,
단파방송 밀청사건은 일제가 1942년 단파방송을 몰래 듣고 전파하던 방송인들을 대거 검거해 투옥한 사건입니다.
당시 일제는 불리한 전황을 숨기기 위해 신문폐간과 함께 해외방송 청취를 금지합니다.
그러나 경성방송국 직원이던 이근창 열사와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하던 홍익범 열사 등 방송으로 독립 투쟁에 나섭니다.
미국의 소리와 중경 임시정부의 단파방송을 몰래 듣고 독립군의 승전소식과 불리한 일본군 전황을 이웃에 전파합니다.
인터뷰> 홍종혁 / 홍익범 열사 아들
“VOD라고 미국의 소리에요. 그런데 이것을 들을 수 있는 곳이 방송국에 있는 단파방송밖에 없었어요. 기자출신이니까 방송국과 교류하면서 미국의 소리를 들어라…“
이들의 활동은 일경의 감시망에 꼬리가 잡혀 1942년 12월부터 이듬해 초까지 300여 명이 검거됩니다.
검거된 방송인들 가운데 75명이 실형을 받았고 이근창, 홍익범 두 열사 등 6명은 광복을 눈앞에 두고 옥사합니다.
이근창 열사의 아들인 이휘웅 옹은 뒤늦게 추서된 부친의 훈장을 만지며 일제의 만행에 치를 떱니다.
인터뷰> 이휘웅 / 이근창 열사 아들
“해방이 되기 전에 옥사를 했으니까 그놈들이 죽였는지 어떻게 했는지 하여튼 옥사를 하셔가지고 서대문 화장장에서 화장해 가지고 씨도 없이 없어져 버렸어요.“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을 찾은 관람객들은 잘 알지 못했던 방송인들의 독립투쟁 자료를 보며 그분들의 애국정신과 고마움을 마음에 새깁니다.
인터뷰> 임연희 / 서울 서대문구“이렇게 훌륭한 분들이 계셔서 저희가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단파방송 밀청 사건.
이 사건은 단순한 사건이 아닙니다.
방송인들이 우리민족의 눈과 귀를 가리는 일제의 탄압에 의연히 맞선 항일 독립투쟁 운동입니다.
70년이나 묻혀 있던 이들의 공적은 방송단체의 도움으로 빛을 보게 됐으며 이근창 열사 등 6명이 뒤늦게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됩니다.
인터뷰> 이장춘 / 방송사 연구가
“그 방송을 듣는다는 것은 바로 자기 목숨을 거는 겁니다. 그런데 이 방송을 듣고 독립운동가들에 전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국민들에게 용기를 주고 해방의 씨를 뿌렸습니다.“
전파로 항일 투쟁을 한 이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기념비에는 해마다 후배들이 찾아 추모행사를 열어 방송인들의 독립 정신을 기리고 있습니다.
국민리포트 문인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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