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만 있어도 가슴 한 켠이 먹먹해지는 곡.
'어머님의 마음'입니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인해 30만 명의 미망인이 생겨났고 가장의 짐까지 짊어진 채 살림을 도맡아했던 이들은 우리네 어머니들 이었습니다.
일 년에 단 하루 있는 '어머니날'은 고된 일상 속 보상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녹취> 대한뉴스(제213호)
"이날 하루 만은 집안 살림과 아들들의 걱정도 잊고 포근히 쉬고자 주름살에서 핀 어머니들은 부풀은 5월의 하늘 아래 다람쥐를 하며 즐겼습니다."
가슴에 단 카네이션처럼 어머니 얼굴에 모처럼 환한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어머니의 희생이 단 하루만의 위로로 채워지진 않겠죠?
어머니의 사랑은 누구보다 자식 앞에서 더욱 강해지는 듯합니다.
"나에게 어머니의 사랑은 나의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고, 바라고, 견디어 내는' 사랑이다. 가실 줄 모르는 사랑, 그것이 나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이다."
-고 김수환 추기경은 기고문 '어머니 우리 어머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는 김구 선생이 구국계몽운동을 하던 중 한 사건에 연루돼 17년 형을 선고 받고 감옥에 갇혔을 때, "나는 네가 독립운동을 하다 잡힌 것이 경기 감사를 한 것보다 더 기쁘다."고 말했습니다.
독립운동가인 아들과 함께 나라의 아픔을 극복하고자 한 위대한 어머니였습니다.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이희아 씨.
피아노를 배우면서 매 순간순간이 큰 고비였습니다.
그녀의 어머니 우갑선 씨는 그녀를 엄격하게 가르쳤고 결국 그녀를 신체적 장애를 극복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만들었습니다.
역도의 장미란 선수에게도 든든한 버팀목 같은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외모보다 내면을 채우라'는 어머니의 가르침은 그녀를 세계적인 역도선수로 우뚝 서게 한 밑거름이 됐을 뿐 아니라, 장 선수의 외모는 이제 땀의 결실이자, 희망의 상징으로 수많은 청소년들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130여개 특허를 출원해 '발명왕'으로 불리는 카이스트의 황성재 씨를 기억하실 겁니다.
그의 어머니 강훈옥 씨는 아들에게 항상 이렇게 얘기했다고 합니다.
"넘버 1이 아니라 온리 1이 되어라"
때론 든든한 후원자로, 조력자로, 또 때론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 주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힘이 되는 '어머니'.
가정의 달 5월입니다.
우리네 어머니들의 가족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꼭 한 번 되새겨보시기 바랍니다.
<열정 대한민국>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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